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필자는 지난 몇 주간 전국을 돌며 각 지역별 총장 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지금 지역대는 초비상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이구동성의 진단이다. 회의에 참석한 한 총장이 “우리나라 대학은 위치 선정에 따라 그 승패가 좌우된다. 우리 대학도 서울에 있었다면 적어도 학생 모집 문제로 머리를 싸맬 일은 없지 않았겠나”고 탄식을 해 모두가 공감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대의 정원 미달 사태는 대학 차원의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교육력 저하, 지역 경제 쇠락, 젊은 인구의 수도권 유출 등으로 이어져 머지않아 지방 소멸로 가는 매우 심각한 국가적 문제이다.
사실 지역대는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정권에 따라 고등교육정책의 방점이 달랐지만, 목소리 한 번 내어 보지 못하고 역대 정부가 하라는 대로 숨죽이며 정부 정책에 철저히 순응해 왔다. 국가대계를 충분히 감안한 정책이라고 믿고 묵묵히 따른 것이다. 13년 전 정치 논리로 시작된 등록금 동결이 지금껏 계속되어 대학 재정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조사에 의하면 2017년 각 대학의 수입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2011년 대비 평균 66억 원 이상 감소했다. 2018년 이후로도 물가오름세가 이어지고 있어 작년엔 수지가 더 악화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보니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매년같이 찾아오는 대학 평가에 사활을 걸고 모든 역량을 소비하고 있다. 왜냐하면, 장기간의 등록금 동결로 발생한 막대한 재정적 결손을 보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정부 사업에 선정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인구 급감이라는 쓰나미가 바로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대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각종 규제는 자구책 모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새 학령 인구급감과 수도권 집중이라는 삼각파도가 사정없이 덮쳐버린 것이다.
지역대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무엇보다 지역대를 지역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풍토가 필요하다. 지역민들의 사랑과 관심 없이 지역대는 존재하기 힘들다. 당연히 지역대학도 지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함께 상생할 방안을 적극 찾아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중앙정부 지원사업 따내기에 몰두하게 되어 있는 구조에서 지자체와 함께 지역발전에 꼭 필요한 연구와 인재 양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학-지자체 협력 시스템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지자체 지역민 지역기업과 각 대학이 가진 특성화 분야와 연계된 지역발전 모델을 도출하고 이를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된다면 좀 더 지역 밀착형 대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는 지역대학이 작금의 위기상황을 잘 극복하고 연착륙 (soft-landing)할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도움을 주어야한다. 현상적인 상황만 보고 일방적으로 퇴출대학을 지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소위 ‘한계대학’이 적절한 구조조정을 통하여 최적화 (optimize) 할 수 있도록 경영지원을 해 주고, 구조조정에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일부 부담해야 한다.
셋째, 과감한 규제 완화를 단행하여 대학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서게 해 주어야 한다.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얽히고설킨 각종 규제는 대학을 사면초가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학 차원에서 고작 할 수 있는 구조개혁이라곤 정원감축과 학과 통폐합정도 뿐이다. 이는 오히려 대학의 재정 구조를 더욱 악화시켜 부실대학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대학의 유휴 자산과 시설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교육에 필요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길을 터 주어야 한다. 대학이 신대륙을 찾아 나서야 하는데, 구대륙에 계속 머물게 해서는 해법이 있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시적 특별회계나 장기적으로는 사립대학육성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등록금 인상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정부도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재정지원을 통해 지역대학들의 위기타개 노력에 힘을 보태야 마땅하다. 법 제정을 통해 대학이 자유롭게 경상비로 활용할 수 있는 재정지원을 해 주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이미 1976년 ‘사립학교 진흥조성금법’을 제정해 대학 당 한 해 평균 5억1908만 엔 (한화 약 53억5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일본 대학 수입금의 약 10% 수준으로, 대학들은 이 돈을 경상활동에 쓸 수 있다. 이러한 제도적 뒷받침에 힘입어 일본의 지역대는 비교적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중앙의 시각으로 보면 지역대 문제는 또 하나의 골치 아픈 ‘지방문제’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의 국가적 의미를 뒤늦게 알게 될 때쯤이 되면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특단의 관심이 필요하다.
동서대 총장